해방 76년째인 지금도 ‘친일 청산과 일제잔재 극복’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있다. 우리 모두가 동참해 찾아내고 뿌리 뽑아야 할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갈 길이 멀다고 해 가지 않으면, 목적지는 그만큼 요원해질 뿐이다. 그런 점에서 경기도의 행보는 가히 주목할 만하다. 3·1운동 100주년이던 2019년부터 도내 친일잔재 조사를 시작으로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다각도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아울러 ‘항일운동’에 대한 가치를 새롭게 조명하기 위한 각종 사업들까지 활발히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문화독립’을 완성하는 날까지, 한 걸음 한 걸음 함께 나아가자는 의미를 담아 준비한 기획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진정한 ‘문화독립’ 완성하는 날까지 ② 일제잔재 청산, 지속적 실천운동 돼야 ③ 일제가 두려워 한, 민속신앙과 전통 ④ 우리의 전통 민속놀이는 왜 사라졌나 ⑤ 숨겨진 의미 알면 쓰지 못할 일제잔재어 ⑥ 삼베 수의·유족 완장 장례문화, 전통 아니었다? ⑦ 항일 독립운동 정신, 문화예술 콘텐츠로 만나다 계속 3·1운동과 임시정부의 항일정신을 계승하고 일제잔재 청산을 위한 경기문화재단의 ‘2021 문화예술 일제
나쁜 역사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다. 8월 1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알리고, 피해자들을 기리기 위한 국가기념일이다. 김학순 할머니가 최초로 피해를 증언한 날을 기념해 정해졌다. 수원시에도 위안부 피해자가 살고 있었다. 영문도 모르고 끌려갔던 소녀였지만 끔찍했던 기억을 꺼내 평화와 인권을 설파하는 활동가로 왕성하게 활동했던 故 안점순(1928~2018) 할머니다. 일본의 만행을 알리고,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던 할머니는 일본으로부터 직접적인 사과를 듣지 못한 채 영면했다. ◇ 방앗간 앞에서 시작된 악몽의 시간 순이는 일제의 핍박이 극심하던 1928년 겨울 서울 마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셔서 순이 가족은 형편이 좋지 못했다. 삼 남매를 키우기 위해 헌신하는 어머니를 돕기 위해 순이는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하는 효심 깊은 소녀로 자랐다. 불행은 예고도 없이 찾아왔다. ‘마포 복사골 큰 방앗간 앞으로 몇 살부터 몇 살까지의 여자아이들은 다 모이라’는 방송이 울려 퍼진 어느 날, 순이는 엄마 손을 잡고 방앗간 앞으로 갔다. 오라면 가야 하는 시절이었다. 쌀가마를 재는 저울에 여성들이 한